부루마블 v 모두의 마블

1980년대 한국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부루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이 있었습니다. 원래 영어 이름으로는 ‘Blue Marble’이기 때문에 ‘블루마블’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한국 어린이들이 발음하기 좋게 ‘부루마블’로 공식 이름을 정했다고 합니다. 이 게임은 건축디자이너 출신인 이상배씨가 설립한 씨앗社에서 출시했는데, 네모난 보드판의 네 변을 따라 국가/도시명이 붙은 칸들이 일렬로 배치되어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수만큼 칸 수를 이동해가며 땅 따먹기를 하고 통행세를 받는 게임입니다.

세대가 변함에 따라 보드게임도 이제 모바일 폰 속으로 들어갔는데, 모바일 게임용 보드게임을 출시한 회사는 씨앗社와는 전혀 무관한 넷마블이라는 회사였습니다. 넷마블은 ‘모두의 마블’ 이라는 이름하에 이 게임을 출시해서 누적 매출액이 1조원을 넘길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문제는 이 ‘모두의 마블’이 ‘부루마블’과 매우 유사할 뿐만 아니라 넷마블이 자사 게임을 ‘부루마블의 모바일 버전’이라고 대놓고 광고한 것이었습니다. 씨앗社로부터 ‘부루마블’의 지식재산권을 인수한 아이피플스는 2016년 넷마블을 상대로 한국 법원에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 결과는 의외로 아이피플스의 완패였는데, 법원은 두 게임이 80%정도 유사하지만 사실 ‘부루마블’도 1935년에 출시되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미국의 ‘모노폴리’ 게임 구성을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모노폴리’에서는 없었던 게임규칙을 새롭게 ‘부루마블’에서는 소개한 것들이 있지만 한국법원에서는 이런 게임 규칙들에는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어 저작권이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나아가, 넷마블이 ‘부루마블’의 인기에 편승해 ‘모두의 마블’을 홍보한 것은 인정되나 이것이 법적으로 불공정한 상거래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고개를 약간 갸웃하게 할 수 있는 판결입니다만 어찌되었든 이번 판결로 인해 한국에서 ‘부루마블’ 게임을 베낀 제2, 제3의 게임이 나타나도 별 문제가 안 될 것 같습니다.  

한국 게임 업계는 안그래도 중국 업체들이 무분별하게 한국 게임을 베끼고 있는 요즘 추세에 이번 판결이 오히려 한국 게임 산업 보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작성자: 김현태 호주변호사, 상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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