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Gucci)와 게스 (Guess)

첫번째 이니셜만 들어도 어떤 특정 회사나 브랜드가 연상된다면 그 회사나 브랜드는 일단 인지도 면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S전자, H 자동차 라고 하면 이들이 어떤 회사를 의미하는 지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호주의 경우 도로에서 종종 눈에 띄는 대형 M 마크 표지판은 인근에 어떤 버거 체인이 있는지 예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상표법에서 ‘주지성’은 특정 지역이나 관련 업계에서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것을 말하는 반면 ‘저명성’은 주지성을 넘어 업계를 불문하고 일반 공중에 널리 알려진 것을 말합니다. 알파벳 한 글자만 보고도 일반 사람들에게 특정 브랜드를 연상시킨다면 그 브랜드는 이미 저명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패션 업계에서는 이니셜을 형상화한 로고를 브랜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동종업계에서 같은 이니셜을 사용하는 경쟁업체가 나타나 똑같이 유명해질 경우 발생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패션 기업 게스 (Guess Inc.)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 (Guccio Gucci S.p.A.)의 사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두 기업은 알파벳 ‘G’를 두고 무려 10년 가까이 세계 곳곳에서 소송을 벌여왔습니다.

설립년도로만 보면 구찌는 1921년, 그리고 게스는 1981년으로 무려 백년이 넘게 장수한 구찌의 브랜드 파워를 게스가 넘어서긴 어렵지만, 청바지 회사로 시작한 게스는 시계, 운동화, 핸드백 등 다른 영역으로 발빠르게 사업을 확장시켜 현재 전세계 100여국, 1,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좌:구찌상품, 우:게스상품, 이미지 출처: The Business of Fashion>

소송의 포문은 구찌가 열었습니다. 2009년 구찌는 게스가 스니커즈 운동화에 사용한 G 형상의 로고 (알파벳 G를 서로 맞물리게 배치)가 자사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게스를 상대로 미국 뉴욕 지방법원에 제소했습니다. 게스만큼 큰 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상표 검색을 안 해봤을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구찌 상표나 제품에 사용된 무늬등을 사전에 인지했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출시했다는 것은 침해 가능성을 낮게 보았거나 아니면 위험을 감수한 전략을 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2009년 미국의 뉴욕지방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구찌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게스에게 상표권 침해액으로 $4.7 million 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구찌는 미국 외에도 이태리, 프랑스, 호주 및 중국에서 게스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였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국가마다 판결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즉, 구찌의 본거지인 유럽에서는 오히려 미국 기업 게스가 승리한 반면 호주와 중국 법원에서는 1심에서 구찌의 승소 판결이 났었습니다.

이태리 밀란 (Milan) 법원의 판결을 들여다보면 담당판사는 관련된 소비자군(群)과 제품 가격을 감안해서 상표의 침해 여부를 판단했는데 구찌와 게스의 상표 간 시각적인 차이가 있고 또한 고가의 구찌 상품 및 패션 업계의 신중한 소비자 (prudent consumers) 를 고려할 때 두 제품 간 혼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밀란 법원은 구찌의 몇몇 상표들에 독창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제품에 체화될 경우 식별력이 없다며 오히려 등록 무효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태리에서 등록 무효가 된 구찌의 G로고 (좌) 와 꽃무늬 상표 (우)>

호주 연방법원에서는 이탈리아 법원과는 반대로 기만적 유사성 (deceptively similarity)에 근거해서 불완전한 기억 (imperfect recollection)을 가진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게스의 제품들이 명품 브랜드 구찌에서 생산한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보고 게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게스와 구찌는 호주 특허청에서도 소송을 전후해 각각 G로고에 대한 여러 상표들을 출원했는데 아래 로고들에 대한 등록 저지에도 사활을 걸고 있었습니다. 

<2011년 4월에 게스가 호주에 출원한 GG로고상표(좌)와 2011년 9월 구찌가 호주에 출원한 로고상표 (우)>

구찌와 게스 양사 간 법원에서 패한 쪽은 다시 상위법원에 항소를 했었기 때문에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던 분쟁은 지난달인 2018년 4월 극적으로 합의에 이르게 되어 장장 10년여에 걸친 분쟁들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양사 간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 진행중이던 국가들의 각종 소송 및 특허청 관할 이의신청들은 일괄적으로 취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작성자: 김현태 호주변호사, 상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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