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전쟁

수년 전 에너지 드링크 “V”로 유명한 Frucor Beverages 社는 V 음료수의 깡통 색깔인 녹색 (정확하게는 Pantone 376c 색상)에 대해 독점권을 얻고자 이 색깔을 대상으로 호주 특허청에 상표등록 출원을 했습니다. 경쟁사의 상표출원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코카콜라社는 즉각 이의신청에 나섰고, 게토레이와 네슬레도 코카콜라와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Frucor의 녹색 상표등록을 저지하는 데 동참했습니다.

코카콜라 등은 이 녹색이 호주에서 여러 음료 용기에 두루 쓰이고 있고, 특히 자사의 Mother 에너지 드링크 “Green Storm” 및 게토레이의 “Green Apple”에도 유사한 녹색 표지가 사용됐다는 점을 들어 Frucor가 녹색에 대해 독점권을 가지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이에 Frucor는 소비자 설문 조사를 실시해서 응답자 중 48%가 녹색의 음료수 용기를 보면 자사의 V 음료수를 연상시킨다는 답변 (10%의 응답자가 Sprite를, 그리고 9%가 게토레이를 연상시킨다고 답변)을 근거로 들어 이 녹색이 자사 상품의 출처표시 기능을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016년 6월 호주 특허청은 이 사건의 결정을 내렸는데 결론적으로 Frucor의 색채상표를 거절 결정하였습니다. 결정문의 요지는 녹색이 Frucor의 get-up일 수는 있으나 Frucor의 상품만을 연상시킬 만큼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Frucor는 즉각 반발하여 호주 연방법원에 appeal을 신청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색깔이 어떻게 상표로 등록될 수 있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개념의 상표는 문자나 숫자, 로고 등으로 이루어졌던 반면 최근에는 신개념 상표로 불리우는 색채, 소리, 냄새 등도 상표로 등록 및 보호되고 있습니다. 이들도 권리의 효력면에서는 전통적인 상표들과 구분없이 동등하므로 등록에 성공하면 독점적/배타적 사용권이 부여됩니다.

호주에서 색채 상표와 관련된 분쟁이 Frucor 社 이전에도 여러 건 있었습니다. 에너지 대기업 BP도 그 중에 하나로, BP社는 1990년대 초 일찍이 녹색 (Pantone 348c 색상)에 대해 호주에서 상표 등록을 시도했지만 특허청 및 연방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뒤이어 실제 BP 주유소에 사용되던 녹색 줄무늬 상표를 등록하려고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슈퍼마켓 거인 Woolworths가 자신들의 앰블럼에도 유사한 녹색이 사용된다며 발목을 잡아 결국 녹색에 대한 독점권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녹색 뿐만 아니라 노란색을 대상으로 한 소송도 과거에 있었습니다. 2006년 Sensis 社 주식의 70%를 소유하며 Yellow Pages와 White Pages를 운영하던 Telstra는 전화번호부에 널리 쓰이던 노란색에 대해 상표 출원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등록에 성공했습니다. 이에 온오프라인 전화번호 directory에 유사한 노란색을 사용하고 있던 Daniel Stoten이라는 사람이 연방법원으로 사건을 가져가서 결국 Telstra의 노란색 상표 등록을 무효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연방법원 Bernard Murphy 판사는 노란색이 호주 및 해외에서 온라인 및 출판 전화번호부에 널리 사용되는 관용적인 색상이고, 더 나아가 이 노란색이 Telstra의 상품 또는 서비스를 타사의 그것과 구분하는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십수년 이상 유럽에서 계속되고 있는 Cadbury 초콜렛 제조사 Mondelez 社와 Nestle 간 보라색을 둘러싼 색깔 전쟁도 흥미롭습니다. 2004년 Monelez는 보라색 상표 (Panton 2685c 색상)를 초코렛 등과 관련하여 상표 출원했지만 네슬레의 집요한 반대로 결국 2013년 영국 법원에서 상표등록 거절 결정이 확정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판결 전에 있었던 두 회사 간의 또 다른 법정 다툼에서 Mondelez는 네슬레가 KitKat 초코렛의 막대 모양을 입체 상표로 등록하려는 시도를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두 회사 간 1승 1패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호주에서는 색채 상표의 등록 건수가 약 300건 (혼합상표 포함)에 육박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그렇게 많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색채 상표의 등록 심사가 다소 까다로운 점을 감안하면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김현태 호주변호사, 상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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